경영이론 경영학적 의미로서의 율곡사상
목차 서 론 이율곡의 생애 이율곡의 업적, 주요개념 및 사상 본 론 경영학적 의미로서의 율곡사상 동거계사(同居戒辭)에 나타난 이이의 경영 철학 율곡사상을 토대로한 전략적 해석 율곡 사상의 경영철학적 체계와 인간중시경영적 특성 율곡사상을 토대로 한 기업전략 결 론 실제 경영사례 율곡이이 사상의 현대적 해석과 우리가 나아갈 방향 참고자료 본문 ■이율곡의 업적, 주요개념 및 사상 ◯철학사상 율곡의 이기론(理氣論)이 가지는 특색은 다음과 같다. 이(理)는 무형무위(無形無爲)한 존재이며 기(氣)는 유형유위(有形有爲)한 존재로서, 이는 기의 주재자(主宰者)이고 기는 이의 기재(器材)이다. 즉 이는 이념적 존재이므로 시공을 초월한 형이상적(形而上的) 원리로서 만물에 공통적인 것이며, 기는 질료적(質料的)․작위적(作爲的) 존재로서 시공의 제한을 벗어나지 못하는 형이하적(形而下的) 기재로 국한적인 것이다. 율곡은 이와 같이 무형과 유형의 차이로 이통(理通)과 기국(氣局)을 설명하고, 유위와 무위의 차이로 기발(氣發)과 이승(理乘)을 설명했다. 이처럼 율곡은 이존론(理尊論)을 주장하는 이황과 달리 이의 능동성을 부정하고, 이기의 부잡(不雜)보다는 불리(不離)를 강조했다. 즉 이기가 서로 떨어질 수는 없지만, 묘합(妙合)한 가운데 이는 이이고 기는 기여서 서로 협잡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일물(一物)이 아닌 것이며, 이는 이이고 기는 기라고 하더라도 이와 기는 혼륜무간(渾淪無間)해서 선후와 이합이 없기 때문에 이물(二物)이 아니라는 논리이다. 따라서 이와 기는 서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이와 기의 성질을 구분하여 형이상․형이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이기관은 그대로 인간관에 반영된다. 먼저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면, 그는 칠정은 사단을 포괄한다고 주장했으며, 이에 따라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본래 하나의 성으로 여기고, 이만을 지칭할 때에는 본연지성이라 하고 이와 기를 서로 관련시켜 파악할 때에는 기질지성이라 한다고 했다. 기질지성은 본연지성을 겸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인간의 모든 감정을 총괄하여 말하면 칠정이고 그중에서 특히 선일변(善一邊)만을 지칭하면 사단으로서, 칠정은 사단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사단과 칠정은 근원적으로 둘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사단은 도심이라 할 수 있고, 칠정은 인심과 도심을 총괄해서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인심에는 천리(天理)도 있고 인욕(人欲)도 있어서 인심과 도심은 근원적으로 둘이 아니며, 인심과 도심은 다만 도의(道義)를 위해서 발했는가, 육체적 욕망을 위해서 발했는가에 따라 구분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견해는 인욕을 천리에 배치된다고 보는 기존의 천리인욕설과는 대비되며, 인간의 의식주에 대한 초보적인 욕구를 당연시함으로써 생산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긍정하는 견해로 이어진다. 다음으로 이이는 모든 사물이 변화한다고 여겼다. 그는 변화의 기초에 음양에 구비되어 있는 동(動)과 정(靜)의 속성과 그 음양을 동정하게 하는 법칙성이 작용한다고 생각했으며, 그 운동변화의 원인을 기 자체의 속성 대신 소이연(所以然)으로 설명했다. 주목되는 것은 그가 변화에 대한 이해를 사회현상에 적용한 것이다. 그의 변법사상의 기초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회개혁사상 율곡는 16세기 후반의 조선사회가 중쇠기(中衰期)로서, 오랫동안 도학(道學)이 행해지지 않아 시폐(時弊)가 쌓여 있으므로 이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때 시폐는 본문내용 율곡 사상의 경영철학적 체계와 인간중시경영적 특성 율곡사상을 토대로 한 기업전략 결 론 실제 경영사례 율곡이이 사상의 현대적 해석과 우리가 나아갈 방향 참고자료 □서론 ■이율곡의 생애 본관 덕수(德水), 자 숙헌(叔獻), 호 율곡(栗谷)석담(石潭), 시호 문성(文成), 강원도 강릉 출생이다. 사헌부 감찰을 지낸 원수(元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 1548년(명종 3) 진사시에 합격하고,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다가, 다음해 하산하여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22세에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과 혼인하고, 다음해 예안의 도산(陶山)으로 이황(李滉)을 방문하였다. 그해 별시에서 <천도책(天道策)>을 지어 장원하고, 이 때부터 29세에 응시한 문과 전시(殿試)에 이르기까지 참고문헌 1. 이율곡과 왕안석에게서 배우는 경제개혁의 지혜 (청년사 2000) 2. 율곡사상의 경영철학적 연구 : 지혜경영에 대한 철학적 비전 모색 / 손기원 -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국회도서관) 3. 이율곡, 그 삶의 모습(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4. 충남대 철학과 황의동 교수 - “율곡사상의 체계적 이해” 5. 경제사학 제 15집 제2호(2000.6.30) 한국경영사학회 “율곡이이의 경영사상의 연구” 6. 율곡사랑 http://www.yulgok.co.kr/index1.htm 7. 휴넷, ‘전사원이 함께 하는 윤리경영’ 과정 사례 8. 최양오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 수석부사장 동북아 기고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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